옥포대첩(玉浦大捷)!Golia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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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는
경상남도 거제군에 있는 항구다.
'옥포대첩'이라는 이름은 내가 붙였다.한때 나는 이곳 노동부소장으로 재직시에 옥포조선소 노사간 분쟁사건을 체험하고 처리하였던 일을 글로서 정리하면서 어느 잡지사에 준 그 글제목을 '옥포대첩'이라고 써부쳤던 일이 있었다.
이곳은 이순신장군이 왜선을 맞아 싸워서 일격에 물리친 전승지로서 알려져 있지만 왜란발발 후 가장 먼저 대승을 거둔 곳으로 더욱 그 이름이 빛나고 있는 곳이다.
대우조선말고도 거제도에는 큰 조선소가 많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삼성조선과 인근 통영에 신아조선이 있다.이 세 조선소는 제마다 특징이 있는데 노동문제를 해온 나의 안목으로 특색을 살펴본다면 대우조선은 노동조합 조직이 막강하여 단체의사결정을 노동조합을 주축으로 는데 반해, 삼성조선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은 없지만 사내노동자친목단체인 협의회를 중심으로 단체 의사를 결정한다는 점,그리고 신아조선은 노동조합조직은 있지만 전사원이 사내지주로 노동자들의 단체의사결정은 여기에 의존 한다는 점이 제마다 특이하였다.
물론 노사간의 표면상 격돌이 심하다고 보이는 곳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우조선이었는데 한때는 골리앗이라는 대형기중기를 이용하여 노사간 유례를 볼 수 없었던 격돌이 발생하여 세계적인 충격을 준 일도 있었다.
이런일로 말미아마 회사경영상 신용실추는 말할 것 없고 대부분의 노동조합 간부와 열성조합원들이 대거 체포구금되어 고초를 겪은 것도 뼈아픈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당시만 해도 국가의공권력이 개입하는 예가 없었지만 여기 옥포조선은 정권의 핵심인 수도 서울로부터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으며 경인지역이나 대구,부산,마산같은 공장밀집지역도 아니터라 당시 공권력을 행사함에 지극히 소심했던 '노태우정권'조차 공권력의 행사의 시범지역으로 아주 안성마춤인 절호의 기회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역이었던 것이다.
폐허위에 다시 일어서다.
내가 부임한 시기는 이러한 풍파가 지나간 몇 달 뒤였는데 임지에 도착하자 마자 가장 먼저 보고 받았고 또 해야할 일은 옥포조선에 가는 일이었다. 회사는 회사대로 노동조합은 노동조합대로 서로가 깊은 상처를 입고 신음 하고 있는 중환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노동조합사무실에 가 보면 엊그제 분신으로 귀한 목숨을 버린 조합원의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고 울구락 풀그락 하는 프래카드, 대자보등등은 가는곳 마다 찢밝겨져 있다.
점심을 하기위하여 회사내 식당을 찾아 갔다. 넓직한 곳인데 이곳 저곳 뿔뿔히 나뉘여져 식사를 하는 모습들은 어찌보면 정다운 사람들끼리 모인 것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 보면 같은 노동자끼리인데도 서로 서로가 눈인사는커녕 혹여 눈빛이나 마주칠까봐 피해가는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나는 함께한 사람에게,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만난 것 같은데요?"하였더니 그 사람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한때는 같은 조합원이었지만 노동조합의 의사가 강경,온건, 중도 등등으로 갈려지게 되면서 조합원들끼리 서로 응어리가 맺혀 원수처럼 싸우지 않으면 않되었다"고 한다.말하자면 파벌이 조성되고 이에 휩쌓인 조합원들의 방황이 이런결과를 갖어 왔나 싶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여기에 참고하기 위하여를 간략히 소개하고자한다.이글을 쓴이는 대우조선 노동조합 인터넷홍보를 맡고있는 조현우씨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골리앗'기중기를 가봤다.크기가 하늘끝에 닿을 것 같은 높이에 산만큼이나 큰 무쇠뭉탱이를 번적 들어 옮기는 광경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팔레스타인의 영웅'골리앗'을 연상하면서 다윗의 돌팔맹이 한 개로 저 초능력 막강한 힘의 덩어리가 단박에 나가 떨어 졌다는 표현에 나의 생각은 그냥 헷갈리지 않을 수 없어'참 어마어마하구나'하는 감탄사만 토했다. 해를 넘기면서 시작되는 임금협상은 또다시 노사간의 긴장감을 무르익게 했다.
이러한 임금협상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는 것은 비단 이회사만은 아니나 엄청난 후유증을 안고 있으면서 다시 한번 응어리를 풀어 보겠다는 듯한 것은 오로지 이 회사만의 특유한 경우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커다란 아픔만 남긴체 응어리를 풀지 못한 처지요 어차피 다시한번 맞붙어 보자는 격렬한 맹수의 거센 숨소리처럼 고조되어가는 노사간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태풍전야다.
고조되는 분위기
노동조합은 새로운 임원진을 구성해서 전력을 가다듬고 있으며 회사 역시 노동조합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대응책모색에 여념이 없었다. 노동조합은 구속된 조합원을 석방하고 이들은 모두 복직시켜야 한다는 것이 가장 앞에 내세운 조건이고 회사는 법이 허용하지 않는 불법조건은 들어 줄 수 없으니 임금협상이나 하자는 주장으로 맞선다.처음부터 만나자마자 회의장을 뛰쳐 나오는 것이 다반사였다.협상장에 나가있는 근로감독관의 보고서는 '물어보나마나'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였다.
늦 봄이 지나면서부터 달라지는 것은 더욱 높아가는 노사간의 갈등에다 한수 더 끼어든 것이라면 정부가 내세운 '총액임금제'였다.이 총액임금제는 임금협상의 수단으로 여러 가지 수당의 명칭을 다양하게 얹어주어 협상의 내용을 교묘하게 은폐하게 만든 고도의 협상기술에 대한 철퇴와 같은 것으로 종래 임금체계를 쇄신하게하는 정책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곧 노사간의 임금협상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 었는데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임금인상의 상한선을 두게하여 그때만 해도 대기업의 임금협상은 중소기업과 달리 임금을 삭감하는 것 보다는 적정한 임금을 확보해 주려는 움직임이 높던때라 협상을 이끌고 가는 처지에서 본다면 원만한 협상을 더욱 난감하게 만드는 장애조건이 되었다.
이때 노동조합을 이끌어가는 이는 최은석씨였는데 입사초기에 김우중회장의 비서였었고 국내외 어디서나 김회장이 가는곳이면 늘 수행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운 청년이었지만 이유는 모르나 분연히 노동조합에 투신,많은 조합원의 신임을 얻어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었다.골리앗 사건으로 구속수감되어 있는 전임 2대 양동생,3대 백순환씨의 후임으로 정석윤씨4대,그 다음으로 제5대 위원장에 그가 당선되었는데 백순환,최은석,최재춘으로 이어지는 비교적 강경파의 맥이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는 처지여서 위원장이 될 수 있었던 조합원으로 부터의 신임도는 약 80%에 육박하였는데 조합내 각계파간의 조직력을 잘 장악하고 있다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그는 젊고 패기만만한 청년이었는데 과묵하고 침착해 보였다.